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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기능 없이 그저 귀엽기만 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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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어 반복 동어 반복은 잉여다. 과장된 놀이이고, 덜어내지 못한 군더더기들이다. ​ ‘A는 B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데, 굳이 A를 설명하기 위해 A1과 A2를 거쳐 A3와 A4를 나열한 뒤 A5와 A6 그리고 A7의 이미지들을 이야기한다. 대상을 잃어버린, 혹은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사람들의 이상한 말장난. ​ 그러나 나는 이 동어 반복을 좋아한다. 그 반복되는 언어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리듬을 좋아한다. 동어 반복은 노랫말의 가능성을 품고 있으며, 언어가 반복적으로 계속 뻗어가면서 이미지를 풍성하게 만든다. 때로는 문장을 길게 만들어 분량을 채워준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심미적이면서도, 기능적이다. ​ 짧고 간결하고, 빠르고 효율적인 길을 두고서, 굳이 A가 B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장황하고 수다스럽게 말하기. 거기에..
닉네임 언젠가 네가 태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며, 너에게 어떤 이름을 붙일까 고민했을 것이다. 그중 한명이 오랜 고민 끝에 너에게 ‘★'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름은 이름다워야 한다’는 집안 어른들의 조언대로, 가족들은 너무 튀지 않으며, 적당히 비전 있어 보이는 이름으로 지어주었다. 그 이름은 그당시 꽤 유행했던 이름이기도 했다. 한 학년에 너와 같은 이름이 꼭 한 명씩은 있었으니까. ​ 그럼에도 너의 가족들과 친구들은 너를 다른 이름으로 자주 부르고 있다. 그들은 너의 독특한 행동, 이상한 습관, 혹은 너를 추상화한 단어, 또는 너를 닮은 대상을 활용해 애칭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애칭으로 너를 부른다. 너의 이름보다 자주. 너는 그 별명들을 너의 이름보다 좋아한다. 그 이름이 담지 못하는 너의 ..
ae 오고무는 나야. 둘이 될 수 없어. ​ - 나도 너야. 너처럼 산책을 하고, 너처럼 돈을 벌고, 너처럼 쇼핑을 하다가, 커피를 마시며, 친구들과 수다를 떤다. 너처럼 책을 읽고, 글을 쓰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고, 취향 좋은 애인을 찾고 있다. - 오늘은 서쪽 타워로 가볼까? - 있잖아, 나도 구찌 배스킷 스니커즈 갖고 싶어. 비건 래더래. 나도 친환경에 관심이 많거든. - 근데 너는 구글 어스에 땅 살 생각 없니? ​ 말이 너무 길어지길래 꺼버렸다.
조카 너는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분유를 먹고 논다. 혼자서 논다. 4시간을 4개의 아기용 의자를 돌아가며 앉으며 무료함 없이 논다. 그러나 다 놀면, 너는 운다. 너의 엄마는 이유식을 챙겨와 너를 먹인다. 그러면 너는 먹고, 잠든다. 두 시간 정도 잠자고 다시 너는 일어난다. 또 같은 의자에 돌아가며 앉아 혼자서 논다. 너는 또 배가 고프다. 너를 씻기고, 저녁 분유를 먹이면, 너는 조용히 잠이 든다. 다음 날 너는 또 새벽 6시에 울며 일어난다.
마이크 상상하기 언젠가 한 인디밴드와의 인터뷰. 성수동의 한 카페에서 우리는 만났다. 내 목소리가 너무 작았던 걸까. 인터뷰이였던 밴드의 멤버 중 한 명이 갑자기 종이를 찢어 끄적거리더니 이 그림을 나에게 건넸다. 그는 노래도 잘 부르는데, 그림도 잘 그리고, 이상한 배려심도 있는 사람이었다. 마이크가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마이크 아닌 마이크가 앞에 있으니까 어쩐지 없던 발성도 생기는 느낌.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그리는 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그들이 얼른 유명해졌으면 좋겠다. 그들이 지금보다 더 뜨면 이 그림을 NFT화 시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