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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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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비워야겠다 올 겨울은 유독 추웠는데, 이제 진짜 봄이 온 것 같아서 옷장과 책장을 정리했다. 2년 간 입지 않았던 옷은 따로 모았다. 당근마켓에 올리려고. 중고서점에 팔 책들도 책장에서 골라냈다. 그중엔 5년째 펼치지 못한 책들도 있었다. 이제는 너무 낡은 이야기여서 팔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책들. 나는 2015년 쯤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 당시 시 문단은 매우 활기 넘치는 분위기였는데, 그 활력의 중심엔 '그들'이 있었다. 모든 문예지 속 비평과 서평은 이들을 환대하는 글로 넘쳐났다. 습작생이었던 나 또한 그들의 이야기를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나는 꿈을 꾸곤 했다. 이렇게 이상하고 축축한 세계가 있구나. 그 세계에 초대받고 싶다. 그 놀이에 참여하고 싶었다. 시를 쓰면서 나는 그들의 행동과 목소리를 자주 흉내 냈..
1개의 이야기, 99개의 문체 레몽 크노의 『문체 연습』 원래 책을 구매하면 띠지는 버린다. 어차피 대개가 마케팅 워딩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XXX 매체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 '아무개 작가의 추천 도서' 등등. 표지에서 기어이 확장해 만든 띠지의 목적은 순전히 후킹과 판매에 있는 듯하다. 구매했다면 그 필요는 사라진 셈이다. 『문체 연습』의 띠지는 내가 버리지 않는 첫 띠지였다. 레몽 크노의 다양한 이 표정 모음이 이 책의 띠지인데, 으엑, 푸하, 읭?, 하, 뜨악, 등등의 표정짤이 그 어떤 카피보다 이 책을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1개의 이야기를 99개의 문체로 말한다. 먼저 그 1개의 이야기는 화자가 만원 버스에서 만난 한 남자를 우연히 광장에서 다시 마주친다는 내용이다. 일종의 디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