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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 아무말

반복은 소모의 기반이 된다

일상은 매일 비슷하게 반복된다. 하지만 계절의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다. 상황 유지를 기반으로 한 의복의 루틴 운영은 겨울이 지나고 환절기에 접어들며 선제적 대처로 바뀐 지 오래다. 하지만 한국의 환절기는 하루에 두 계절을 왕복하고 기존의 옷은 완벽하게 대처하지 못한다. 실패는 거듭되고 성공은 쉽게 잊혀진다. 반복하고 소모시키려는 옷의 운영은 입을 게 없다는 고민보다는 입어야 할 게 너무 많다는 고민을 만들어 낸다.

 

루틴 기반의 착장은 사람 많은 동네의 조악한 조기 축구팀을 꾸리는 것과 비슷하다. 굉장한 선수는 없지만 플레이어는 넘쳐나고 스쿼드는 꽉꽉 차있다. 옷장을 뒤적거리다 보면 얘 순번은 언제 돌아올까 고민하기 일쑤다. 어서 빨리 수명을 다 하고 버려져야 하기 때문이다.

 

일상은 여전히 반복된다. 서울 안이라지만 20분에 한 대 씩 있는 지하철은 아침의 일과를 고정시킨다. 6개월 동안 매일 먹으라는 약을 먹고 물을 마시고 커피를 내리고 집을 나온다. 한동안 9시 30분 열차를 탔는데 해가 길어지면서 슬슬 9시 6분 차를 타기 위해 46분 전에 나온다. 언덕을 내려오고 아파트 단지 안에 조악하게 구성된 비오톱 사이 길을 일부러 가로지른다. 가끔 까만 고양이가 풀 속에 앉아있고 그럴 땐 약간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15분 남짓 걷는 길은 숲길, 잔디길, 보도블록, 아스팔트, 굴다리, 엘리베이터를 타는 버라이어티한 코스다. 12km 떨어져 있는 북한산의 모습을 보며 대기의 상태를 가늠해 보고 일정한 시간에 나오면 일정하게 마주치는 걷기 연습을 하는 할머니, 퇴근하는 가죽 크로스백을 맨 아저씨를 스쳐 지나간다. 입고 나온 옷이 살짝 덥다는 생각이 들지만 저녁이 되면 또 춥겠지. 이건 옷이 문제가 아니라 단지 원래 이런 계절이기 때문이다.